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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아웃 3는 왜 백악관을 폭파했을까 — '현실적인 게 항상 재밌는 건 아니다'

워싱턴 D.C.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라면 백악관을 탐험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폴아웃 3에서 백악관은 방사능 크레이터다. 들어갈 수 없고, 탐험할 수 없으며, 그냥 거대한 구멍이다. 베데스다의 개발자들은 최근 이 결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백악관 주변에 퀘스트가 없었다. 그러니 왜 만들겠는가?" 그리고 이 결정을 인디아나 존스에 비유했다. 마치 복잡한 검술 대결을 준비했는데, 총을 쏴서 한 방에 해결하는 장면처럼, "현실적인 것보다 효율적인 것을 택했다"는 뜻이다.

 

폴아웃 3 커버 아트

 

게임 디자인의 핵심 원칙

 

이 결정의 핵심은 간단하다. "게임플레이가 없는 곳에 맵을 만들지 않는다." 오픈월드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기대하는 것은 "현실 세계의 정확한 재현"이 아니라 "탐험할 이유가 있는 세계"다. 비유하면, 놀이공원에서 관람만 가능하고 탈 수 없는 놀이기구를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철학이다.

 

[!note] 오픈월드(Open World): 플레이어가 정해진 순서 없이 넓은 세계를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는 게임 구조다. GTA, 엘더스크롤, 젤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등이 대표적이다.

 

베데스다는 이 원칙을 백악관뿐 아니라 지하철 시스템에도 적용했다. 실제 워싱턴 D.C.의 지하철 노선은 도시 전역을 연결하는 방대한 네트워크다. 초기 설계에서 베데스다는 이 지하철을 충실하게 재현하려 했다. 하지만 플레이테스트 결과, 몇 킬로미터씩 이어지는 터널을 달리는 것이 "지독하게 지루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개발자의 표현을 빌리면, "현실적인 것이 항상 재미있지는 않다(Being realistic sometimes isn't fun)"는 것이다.

 


 

폴아웃 3 기사 관련 이미지

 

인디아나 존스 비유의 의미

 

베데스다가 사용한 인디아나 존스 비유는 게임 디자인에서 자주 인용되는 개념이다. 영화 레이더스(1981)에서 인디아나 존스가 칼을 휘두르는 적과 대결하는 대신, 권총을 꺼내 한 방에 해결하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원래는 정교한 액션 시퀀스를 촬영할 예정이었지만, 해리슨 포드의 컨디션 문제로 짧게 끝냈고, 이것이 오히려 영화 역사에 남는 명장면이 됐다.

 

비유원래 계획실제 결과
인디아나 존스복잡한 검술 대결총 한 방으로 해결 (명장면)
백악관탐험 가능한 건물크레이터로 대체 (효율적)
지하철실제 노선 재현축소된 구간 (재미있게)

 

비유하면, 요리에서 재료를 모두 넣는다고 맛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게임에서도 모든 것을 만든다고 좋은 게임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철학이다.

 

[!note] 플레이테스트(Playtest): 개발 중인 게임을 실제로 플레이하며 재미, 밸런스, 버그 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많은 디자인 결정이 플레이테스트 결과에 따라 바뀐다. 폴아웃 3의 지하철 축소도 플레이테스트에서 나온 결정이다.

 


 

백악관 전경

 

다른 오픈월드 게임과의 비교

 

이 "재미 우선" 철학은 폴아웃 3만의 것이 아니다. 성공한 오픈월드 게임들은 공통적으로 현실의 축소와 압축을 통해 밀도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게임현실과의 차이디자인 의도
GTA V로스앤젤레스를 1/10로 축소이동 시간 줄이고 밀도 높임
스카이림실제 노르웨이 크기의 수십 분의 1걸어서 횡단 가능한 세계
폴아웃 3워싱턴 D.C. 대폭 축소 + 백악관 제거퀘스트 없는 공간 삭제
위쳐 3폴란드 전역을 여러 지역으로 분리로딩 없는 개별 오픈월드

 

반면 현실을 지나치게 충실히 재현하려다 실패한 사례도 있다. 일부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실제 거리와 시간을 그대로 적용했더니, 플레이어가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데만 현실 시간으로 수십 분이 걸려 이탈률이 높아진 경우가 있다.

 

[!note] 레벨 디자인(Level Design): 게임 내 공간(맵, 스테이지, 던전 등)을 설계하는 분야다. 플레이어의 동선, 전투 배치, 탐험 보상 등을 계획하여 재미있는 공간 경험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현대 게임에 주는 교훈

 

폴아웃 3의 백악관 결정은 2008년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2026년 현재에도 유효한 교훈을 준다. 최근 오픈월드 게임들이 점점 더 커지면서 "오픈월드 피로감"이라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너무 넓고, 너무 많고,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상태다.

 

비유하면, 뷔페에서 접시가 100개인데 맛있는 요리가 10개뿐이면, 100개 중에서 10개를 찾아 헤매는 것 자체가 피곤해진다. 폴아웃 3의 접근은 "접시를 30개만 놓되, 30개 모두 맛있게 만들자"는 것이다. 백악관이라는 화려한 접시를 과감히 빼고, 대신 리벳 시티나 메가톤 같은 퀘스트가 풍부한 장소에 자원을 집중한 것이다.

 

[!note] 오픈월드 피로감(Open World Fatigue): 대형 오픈월드 게임이 남발되면서 플레이어가 방대한 맵과 반복적 콘텐츠에 지치는 현상이다. 유비소프트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가 대표적으로 이 비판을 받아왔다.

 


 

마무리

 

"왜 백악관을 폭파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베데스다의 답은 명쾌하다. 거기에 퀘스트가 없었으니까. 이 한 문장에 오픈월드 게임 디자인의 핵심 철학이 담겨 있다. 유명하고 상징적인 장소라도 게임적 재미가 없으면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오픈월드 게임이 점점 비대해지는 시대에, "빼는 것도 디자인이다"라는 폴아웃 3의 교훈은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참고:

  • https://www.pcgamer.com/games/fallout/the-white-house-is-a-radioactive-crater-in-fallout-3-because-there-were-no-quests-there-so-why-build-it-it-is-our-version-of-indiana-jones-shooting-the-guy-rather-than-pulling-out-his-whip-and-going-into-a-f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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