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조합이 하나 있다. 일본 봉건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미국 스튜디오가 만드는데, 정작 핵심 인력 중 상당수가 한국인이라는 거다. 고스트 오브 요테이(Ghost of Yotei) 이야기인데, 이번에 서커펀치 대표 브라이언 플레밍이 직접 이 얘기를 꺼냈다. D.I.C.E. 어워즈 인터뷰에서 던진 한 마디가 "요테이의 일부는 한국입니다(A part of Yotei is Korea)." 이탈리안 레스토랑 주방을 들여다봤더니 한식 셰프가 핵심 라인을 잡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D.I.C.E.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면
고스트 오브 쓰시마가 2026년 D.I.C.E. 어워즈에서 올해의 어드벤처 게임을 탔다.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뉴스인데, 진짜 재밌는 건 시상식 직후 인터뷰에서 나왔다. 수상 소감? 그건 묻혔고, 플레밍이 갑자기 한국 얘기를 꺼낸 거다.
NOTE
**D.I.C.E. 어워즈**: 게임 업계의 아카데미상 같은 존재다. 미국 인터랙티브 예술과학 아카데미(AIAS)가 주관하는데, 투표권이 현직 개발자한테만 있어서 "개발자가 뽑는 게임상"으로 불린다.
플레밍은 게임 개발을 "계단"에 비유했다. 전작에서 배운 걸 바탕으로 다음 층을 쌓는 방식이라는 건데, 실제로 보면 딱 그렇다. 인퍼머스의 시애틀에서 쓰시마의 일본으로, 거기서 다시 요테이의 홋카이도로. 작품마다 무대가 넓어지고 디테일이 깊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이 계속 같이 있었다는 거다.
생각보다 오래된 인연이다
여기서 놀라운 게, 한국과의 인연이 어제오늘 시작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플레밍이 꺼낸 이야기는 슬라이 쿠퍼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커펀치가 한국어 버전을 만들면서 동적 한글 합성 시스템을 직접 구현했다고 한다. 그냥 번역 텍스트를 집어넣은 게 아니라, 초성·중성·종성을 코드로 조합해서 글자를 만드는 방식을 개발한 거다.
NOTE
**동적 한글 합성**: 한글 유니코드는 초성 19자, 중성 21자, 종성 28자(받침 없음 포함)를 조합해서 11,172개 완성형 글자를 만든다. 이걸 게임 안에서 실시간으로 합성하면 폰트 파일 용량을 줄이면서도 모든 한글을 표현할 수 있다.
이게 왜 대단하냐면, 보통 해외 스튜디오가 한국어를 지원할 때는 외주 번역 업체한테 맡기고 끝이다. 그런데 서커펀치는 한국어라는 언어의 구조 자체를 파고들었다. 번역가가 아니라 한국어학자를 채용한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 이 정도로 진심인 스튜디오가 나중에 한국 출신 아티스트를 핵심 인력으로 데려온 건,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외주가 아니다, 진짜 핵심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플레밍이 말한 건 "한국 업체에 외주를 줬다"가 아니다. 팀 안에 한국인 아티스트가 핵심 자리를 잡고 있다는 얘기다. 리드 애니메이터 수연을 비롯해서, 환경 아트, 캐릭터 모션, 시각적 디테일 전반에 한국인 아티스트들의 손이 깊이 들어가 있다.

소니 재팬과의 협력도 재밌다. 쓰시마 때는 게임 속 한자가 시대적으로 맞는지 일일이 검증받았다고 하는데, 플레밍은 소니 재팬을 "진정한 의미의 선생님이자 안내자"라고 표현했다. 미국 스튜디오가 일본 팀한테 "가르쳐주세요" 하고, 실제 작업은 한국인 아티스트가 핵심을 잡는 구조다. 국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머리가 복잡해지는데, 그냥 프리미어리그 클럽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국적보다 실력이 먼저인 팀이다.
NOTE
**고스트 오브 요테이(Ghost of Yotei)**: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후속작으로, 1603년 일본 홋카이도의 요테이산 인근이 배경이다. 주인공이 여성 사무라이 '아츠'로 바뀌었고, 전작보다 더 넓은 오픈월드와 발전된 전투 시스템을 예고하고 있다.
이 발언이 그냥 넘어갈 얘기가 아닌 이유
1. "미국 게임"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준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미국 게임", "일본 게임" 하고 나누는데, 실제 AAA 개발 현장을 보면 그런 구분이 의미가 없다. 서커펀치 하나만 봐도 미국, 일본, 한국 출신이 한 팀에서 같이 일한다. 마치 국가대표 축구가 아니라 해외 리그 클럽처럼, 좋은 선수면 어디 출신이든 데려오는 구조다.
2. 한국 게임 인재가 넥슨·넷마블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 게임 업계 하면 보통 MMORPG나 모바일 게임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나티독, 산타모니카, 인섬니악 같은 소니 퍼스트파티 곳곳에 한국 출신 개발자들이 있다는 건 업계에서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서커펀치 사례가 특별한 건, 이걸 대표가 직접 카메라 앞에서 말했다는 점이다. 보통은 크레딧 롤에서나 확인되는 건데, 대표가 나서서 "한국이 우리 팀의 일부"라고 한 건 무게가 다르다.

3. 동아시아 감각은 구글 검색으로 안 된다
일본 배경 게임에 한국인 아티스트가 참여한다는 게 단순히 "인력 충원"이 아니다. 같은 한자 문화권의 이해, 동양화적 구도 감각, 갑옷이나 의복의 질감 — 이런 건 레퍼런스 사진을 아무리 봐도 체득할 수 없는 영역이다. 된장 맛을 모르는 사람한테 된장찌개 레시피를 줘봤자 같은 맛이 안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현장에 그 감각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결과물이 달라진다.

마무리
플레밍의 "요테이의 일부는 한국입니다"는 한 마디짜리 발언이지만, 담긴 내용은 꽤 묵직하다. 게임은 더 이상 한 나라의 결과물이 아니고, 감각과 실력으로 모인 팀이 만드는 것이다. 고스트 오브 요테이가 출시되면 홋카이도의 설산을 걸으면서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 이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하나, 주인공의 칼 궤적 하나에 한국인 아티스트의 감각이 어디까지 녹아 있을지.
참고
- https://www.inven.co.kr/webzine/news/?news=31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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