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엘리시움이 2019년을 강타했을 때, 많은 이들이 그 게임을 "CRPG의 신"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이후 ZA/UM에게는 침묵과 내홍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제 그 스튜디오가 새 이름을 들고 돌아왔다. 제로 퍼레이드: 포 데드 스파이(Zero Parade: For Dead Spies). 스팀 넥스트 페스트를 통해 데모가 공개된 이 게임이 ZA/UM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아직은 물음표로 가득하다.



배경: ZA/UM은 지금 어디에 서 있나
ZA/UM은 2019년 디스코 엘리시움으로 게임 어워드 다수를 휩쓸며 인디 씬의 정점에 올랐다. 게임 오브 더 이어, 최고 롤플레잉 게임, 최고 내러티브를 포함한 수상 목록은 이 스튜디오가 단순한 개발사가 아님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 직후가 문제였다.
핵심 창작자들이 잇따라 팀을 떠났고, 내부 분쟁에 관한 소식이 외부로 흘러나왔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핵심 정신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없는 ZA/UM이 여전히 "그 ZA/UM"인지에 대한 의문이 팬 커뮤니티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마치 원조 셰프가 떠난 레스토랑이 같은 메뉴를 내놓는 상황과 비슷하다. 간판은 그대로지만, 맛이 같을지는 직접 먹어봐야 안다. 스팀 넥스트 페스트(Steam Next Fest): 출시 전 게임의 데모를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스팀 주관 행사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시장 반응을 사전에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활용된다.
제로 퍼레이드는 어떤 게임인가
주인공은 허셜 윌크, 콜사인 캐스케이드. 한때 유능한 스파이였지만 5년 전 실패한 임무 하나로 모든 인맥과 신뢰를 잃어버린 요원이다. 게임은 그가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조직은 없고, 후원자도 없고, 남은 건 머리 하나뿐인 스파이가 복잡한 첩보 세계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콜사인(Call Sign): 군사·첩보 조직에서 개인을 식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암호명이다. 실명 대신 작전 내에서 사용되며, 소속과 계급 대신 역할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플레이어는 정보원, 충성파, 선동가 사이를 오가며 활동한다. 단순히 총을 쏘거나 격투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의도와 신념, 숨겨진 비밀을 파악하고 이를 역이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비유하면 체스판 위에서 상대방의 기물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게임이다. 다만 그 기물들이 모두 살아있는 사람이고, 저마다 자기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핵심 시스템: 압박감이라는 양날의 검
제로 퍼레이드에서 가장 독특한 시스템은 "압박감" 메커니즘이다. 피로, 불안, 섬망의 균형을 조절하는 이 시스템은 단순한 체력 게이지가 아니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가 오히려 전략적 이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RPG의 관성을 뒤집는다. 섬망(Delirium): 극심한 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현실 인식이 흐릿해지는 상태를 뜻한다. 의학적으로는 급성 혼돈 상태로 분류되며, 게임에서는 비정상적 상황에서만 접근 가능한 대화 선택지나 행동이 열리는 트리거로 활용된다.
피로가 쌓이면 캐스케이드의 판단력이 흔들린다. 하지만 그 흔들림이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한 반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치 포커에서 실수처럼 보이는 베팅이 상대를 교란하는 블러프가 되는 것과 같다. 정상 상태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선택이 극한의 압박 속에서만 가능해진다는 설정은, 스파이 장르의 심리전을 게임 메커닉으로 번역한 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디스코 엘리시움과의 연속성, 그리고 차이
제로 퍼레이드는 디스코 엘리시움의 독보적인 비주얼 스타일과 시스템 설계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긴장감을 제공하겠다고 공언한다. 디스코 엘리시움이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내면을 파고들었다면, 제로 퍼레이드는 "당신은 누구를 믿을 수 있는가"라는 외부 세계의 불신을 다룬다. CRPG(Computer Role-Playing Game): 캐릭터 성장과 서사 선택을 중심으로 한 컴퓨터 RPG 장르를 통칭한다. 발더스 게이트,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등이 대표적이며, 디스코 엘리시움은 이 장르의 형식을 대폭 해체하고 재구성해 주목받았다.
비주얼 면에서도 전작의 유화풍 질감은 유지되면서, 첩보 스릴러 특유의 차갑고 절제된 색감이 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작이 폐허가 된 도시에 스며드는 음울한 서정을 표현했다면, 이번 작은 그 감성을 비밀과 거짓말로 가득한 첩보 세계에 이식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세계관은 달라지지만 렌즈의 재질은 같다.
핵심 인력 이탈이라는 그림자
이 게임을 둘러싼 가장 큰 질문은 결국 사람에 관한 것이다. 디스코 엘리시움을 만든 핵심 창작자들 없이 ZA/UM이 동급의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스튜디오의 이름은 남았지만, 그 이름을 채웠던 목소리들은 상당수 떠났다.
낙관적 시각에서는 스튜디오 자체의 시스템 설계 역량과 비주얼 언어가 특정 개인에게 귀속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본다. 반대로 비관적 시각에서는 디스코 엘리시움의 정수가 개인의 언어적 감각과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 부재를 제도적 역량으로 대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데모를 플레이한 초기 반응은 아직 팬덤 안에서도 엇갈리고 있다.
마무리
ZA/UM은 지금 두 개의 증명을 동시에 해야 하는 처지다. 제로 퍼레이드가 좋은 게임임을 증명하는 것, 그리고 핵심 인력이 바뀐 이후에도 ZA/UM이라는 이름이 유효함을 증명하는 것. 데모는 그 첫 번째 답안지이고, 채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스팀 넥스트 페스트 데모를 통해 직접 확인하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판단이다. 간판을 보고 들어갔다가 맛이 달라진 식당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 게임의 정식 출시 전까지는 섣부른 기대와 섣부른 실망 모두를 잠시 내려놓는 것이 좋다.
참고: - https://www.inven.co.kr/webzine/news/?news=313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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