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개월, 그리고 절반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이 RPG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직후, 바이오웨어는 속편을 만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의 창시자 데이비드 게이더가 최근 밝힌 바에 따르면, 드래곤 에이지 2의 개발 기간은 겨우 16개월이었다. 그리고 그 일정을 확인한 순간 그가 내린 결정은 퀘스트의 절반을 잘라내는 것이었다.
비유하면 이렇다. 졸업 논문을 1년 동안 쓸 줄 알았는데, "사실 4개월밖에 없어"라는 통보를 받은 거다. 할 수 있는 건 분량을 반으로 줄이는 것뿐이다.
**데이비드 게이더(David Gaider)**: 바이오웨어에서 약 17년간 근무한 시니어 작가.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의 세계관과 메인 스토리를 설계한 인물이다. `발더스 게이트 2`의 일부 캐릭터도 그가 썼다. 2016년 바이오웨어를 떠났다.
"바이오웨어는 작은 게임을 만들 줄 몰랐다"
게이더의 발언 중 가장 인상적인 건 이 한마디다.
"BioWare as a team did not know how to make a small game."
바이오웨어는 발더스 게이트, 매스 이펙트,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 같은 대작 RPG를 만드는 팀이었다. 수백 시간 분량의 콘텐츠, 분기하는 스토리라인, 거대한 세계관 — 이것이 바이오웨어의 DNA였다. 그런 팀한테 "16개월 안에 하나 만들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큰 게임의 스케일로 시작해놓고 시간이 부족해서 잘라내는 결과가 나온다.
비유하면 올림픽 마라톤 선수한테 100미터 달리기를 시킨 것과 비슷하다. 페이스 배분이 아예 다른 종목인데, 몸이 기억하는 건 42.195km의 리듬이다. 결국 DA2는 "대작의 구조에서 살을 빼고 뼈만 남긴 게임"이 됐다.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Dragon Age: Origins)**: 2009년 출시된 바이오웨어의 다크 판타지 RPG. 6개의 기원 스토리, 방대한 선택지와 결과, 80~100시간 플레이타임으로 비평가와 팬 모두에게 극찬받았다. DA2는 이 작품의 직접적인 속편이다.
DA2가 받은 비판, 그 뒤에 있던 사정
드래곤 에이지 2는 2011년 출시 당시 팬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가장 큰 불만은 세 가지였다.
1. 반복되는 던전 맵
같은 동굴, 같은 창고가 퀘스트마다 재활용됐다. 팬들이 "이 맵 아까 봤는데?"라고 할 정도였다. 16개월이라는 시간 제약을 알고 나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새 맵을 만들 시간이 없으니 기존 에셋을 돌려 쓸 수밖에 없었다.
2. 축소된 스케일
오리진이 페렐든 왕국 전체를 누비는 대서사시였다면, DA2는 커크월이라는 하나의 도시에 갇혀 있었다. 이것도 개발 기간의 결과다. 여러 지역을 만들 여력이 없으니 하나의 도시를 깊게 파는 방향으로 전환한 거다.
3. 단순화된 전투
오리진의 전술적 전투가 액션 RPG에 가깝게 바뀌었다. 이건 시간 문제만은 아니고 의도적인 접근성 확장이었지만, 팬들은 "우리가 좋아했던 바이오웨어 RPG가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 항목 |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 | 드래곤 에이지 2 |
|---|---|---|
| 개발 기간 | ~4년 (추정) | 16개월 |
| 맵 다양성 | 왕국 전체 | 단일 도시 |
| 퀘스트 규모 | 방대한 분기 | 절반 삭제 |
| 메타크리틱 | 91 | 79 |
| 팬 반응 | 극찬 | 혼재 |
그래도 남은 것들
| 비판 | 게이더의 관점 |
|---|---|
| 반복되는 던전 맵 | 에셋 재활용 — 시간 제약의 결과 |
| 하나의 도시만 | 깊이 있는 설계로의 전환 |
| 단순화된 전투 | 의도적인 접근성 확장 |
이렇게 보면 DA2의 문제는 "못 만든 것"이 아니라 "다르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에 가깝다.
DA2를 변호하는 팬들도 있다. 주인공 호크의 서사는 바이오웨어 게임 중에서도 손꼽히는 개인적인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도시에서 10년간 살아남는 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이 오히려 신선했다는 거다. 동료 캐릭터들 — 바릭, 이사벨라, 메릴, 펜리스 — 의 매력도 시리즈 최고 수준이라는 의견이 많다.
비유하면 예산이 부족해서 블록버스터 대신 인디 영화를 찍었는데, 그 인디 영화가 나름의 팬층을 확보한 셈이다. 문제는 팬들이 기대한 건 블록버스터였다는 것이다.
**메타크리틱(Metacritic)**: 게임·영화·음악 등의 리뷰 점수를 종합하는 사이트.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며, 게임 업계에서는 메타크리틱 점수가 보너스 지급 기준이 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마무리
DA2의 이야기는 "시간과 예산이 게임의 질을 결정한다"는 뻔한 교훈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바이오웨어처럼 대작에 최적화된 팀이 갑자기 소규모 프로젝트를 맡으면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게이더의 "작은 게임을 만들 줄 몰랐다"는 말은 비난이 아니라 솔직한 자기 진단이다. 그리고 이 교훈은 최근 앤섬, 드래곤 에이지: 더 베일가드까지 이어진 바이오웨어의 굴곡진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열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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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https://www.pcgamer.com/games/dragon-age/dragon-age-creator-says-he-had-to-take-out-half-of-the-quests-in-dragon-age-2-once-he-found-out-they-only-had-16-months-to-make-it-bioware-as-a-team-did-not-know-how-to-make-a-small-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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